혈관성 치매와 당뇨병

  • 등록 2023.05.10 1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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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에서 사망 원인 1위는 암이지만 단일 질환으로는 뇌혈관질환(뇌졸중)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노인이 되어 가장 두려워 하는 건강문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도 뇌졸중과 치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두려운 질환 두 가지 중 하나에 걸릴 위험률이 약 33%가 되는데, 다른 말로 세 명 중 한명은 이 두려운 존재에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혈관은 주택의 배관 시스템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새 집일 때는 배관에 문제가 없지만 주택이 오래되어 낡으면 상수도관을 포함한 배관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수도관이 낡아 녹이 쌓이면 막히게 되고, 수도관 벽에 균열이 생기거나 구멍이 나면 누수가 발생하는 것처럼 우리 몸의 혈관, 특히 뇌혈관도 노화가 진행될수록 막히거나 터질 위험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앞장에서 이야기했던 혈관 위험인자들, 즉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과잉 염분섭취, 고호모시스틴혈증들을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혈관 내벽 손상이 심해져서 혈류에 와류현상이 생기고, 이것이 다시 혈관손상을 촉진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혈관 위험인자를 조절하지 않으면 왜 뇌경색이나 뇌출혈의 발생위험이 높아지는가를 쉽게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혈관병에 의해 뇌혈류 상태에 변화가 생기면 아주 경미한 주의력 저하부터 심한 치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지 장애가 나타나기 때문에 혈관인지 장애(Vascular Congitive Impairment, VCI)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독립적인 일상생활 유지에 큰 불편이 없는 경미한 인지 장애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심한 치매까지 모든 인지 기능 저하를 총망라한다.

  혈관 치매의 증상은 혈관병에 의해 손상되는 뇌 부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전두엽(이마엽)을 침범하는 뇌경색에 의하여 계획성이나 판단력이 흐려지는 집행기능 장애와 자발적으로 무언가 해보려는 의지가 없어지는 의지력 상실이 나타난다. 대뇌 반구의 좌측에 있는 언어중추가 손상되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실어증)가 생기기도 한다. 만일 뇌의 피질(겉질)이 아닌 백질에 혈류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백질변성이 발생하는데, 이때는 기억력이 떨어지기 보다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며 우울증이 잘 동반된다. 

  혈관 위험인자가 조절되지 않아 병이 진행하게 되면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기억 장애가 심해지고 감정기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상황에 맞지 않게 작은 자극에도 눈물을 보이거나 웃음보를 터뜨리는 병적 울음이나 병적 웃음을 보이게 된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의 불행한 소식을 접하고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병적인 웃음이라 한다. 이때 환자는 자세가 불안정하고 걸음걸이가 나빠져 자주 넘어지며 소변을 실수하는 일이 잦아진다. 

  

  몇 차례 반복된 뇌경색 때문에 혈관 치매가 발생했던 73세 여자 이경색 씨가 최근에 갑자기 심해진 혼동 증세로 입원하였다. 이경색 씨는 고혈압과 당뇨를 잘 조절하여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로 더 이상의 증상 악화 없이 잘 지내던 분이었다. 그러나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걸음걸이가 좋지 않던 이경색 씨는 약 2개월 전 빙판에서 미끄러지며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걸음걸이가 더 나빠져 운동량이 급격히 저하된 상황이었다. 혈압은 정상적으로 유지되었으나 혈당은 거의 조절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촬영한 뇌 MRI 사진에서 좌측 뇌 심부에 아주 작은 뇌경색이 발견되었다.


  이경색 씨처럼 외부적 요인(이 경우는 발목 골절에 의해 운동량이 적어져 당뇨가 악화됨)에 의해 혈관 위험인자 조절이 잘 안되면 뇌졸중의 재발위험이 높아진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작은 뇌경색이라도 증상을 극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 이경색 씨의 경우 작은 뇌경색이 생기기 전에는 가족들이 돌보면서 자택에서 잘 지내고 있었으며 식이와 섭생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뇌경색이 생기면서 가족을 못 알아보기도 하고 입원 후에는 수액치료 도중 주사 바늘을 뽑는 등 매우 혼란스러워 하였다. 아주 미세한 뇌경색이지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병변이 생겨 혼돈상태를 유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경우 작은 뇌경색에 의한 이상 행동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설 점차 완화되는 것이 보통이며 재발이 되지 않는 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미국 켄터키대학 스노든(Snowdon) 박사 팀의 연구에 의하면 작은 열공성 경색이 하나라도 생기면 뇌경색이 없는 군에 비해 임상적으로 치매가 나타날 위험도가 약 20배 정도 높아진다고 했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평소 혈관 위험인자의 철저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남형철 기자 hch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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