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당나귀

  • 등록 2023.12.13 08:00:06
크게보기

 

나는 여름을 사랑하노니태양이여이 얼음들을 다 녹여주오.

봄도 가을도 다 필요 없소나는 여름만 있으면 좋겠소.

 

나는 겨울이 정말 싫소.

얼어붙은 눈길에선

자전거를 탈 수 없소.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오.

여름에 나는

조금도 늙지 않는다오.

 

나는 불타는 모래가 좋고소나기가 좋고계곡의 그늘도 좋소.

여름 과일들은 물이 많소나는 수박이 좋고 참외가 좋고 포도가 좋소.

 

푸는 바다를 보시오.

저 많은 물들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오.

나는 번개가 유쾌한 형이상학처럼 내리꽂히는

들판으로 가고 싶소.

 

여름엔 양말을 신지 않고도 자전거를 탈 수 있지 않소?

여름엔 애인과 함께 야외에서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소?

 

여름 새들은 가볍소.

그들은 순결한 구름과

예측할 수 없는 푸르름을 사랑한다오.

여름 풀들은 키가 쑥쑥 자라고,

여름 여자들은 모두

태양을 잉태하고 있소.

 

순수한 분노여나는 불가피하게 푸른 당나귀가 될 수밖에 없다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의 한복판나는 강가에서 장작불을 피우며 얼음을 녹이고 있소.

 

 -원구식

 



문학비평가인 허먼 노드럽 프라이(Herman Northrop Frye)는 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cism)’라는 책에서 문학 장르를 봄의 희극여름의 로맨스가을의 비극겨울의 아이러니로 분류했습니다희극은 아름다운 봄인 청춘의 행복한 이야기인 성장이며여름의 로맨스는 소원과 욕망이 실현되며가을은 영웅의 쇠망이며겨울의 아이러니는 소멸을 말합니다자연의 주기를 따라 변모하는 인간세계는 출생성장결실(완성), 소멸다시 출생성장으로 반복의 형식을 띱니다.

 

순결한 구름이 하늘에 떠다니고 풀들이 쑥쑥 자라는 들판에 유유히 노니는 푸른 당나귀.

우리 인간의 소원도 푸른 당나귀처럼 봄도 가을도 싫은오직 여름만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청춘과 사랑과 뜨거움이 가득했던 여름만을 좋아하지만우리는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못 하고 봄을 겪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 지금은 겨울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겨울 어스름 깊어진 강가에서 장작불을 피우며 얼음을 녹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세계의 소멸은 단순하게 소멸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주기에 따라 우리는 언젠가어디선가 또다시 태어나 찬란한 여름을 맞이할 겁니다.



 박미산(시인백석 흰 당나귀 대표)

남형철 기자 hchnam@naver.com
Copyright dangnyoshinmun All rights reserved.




주소 :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로6길 9-1 1층(남가좌동) 등록번호: 서울, 아54751 | 등록일 : 2023-03-16 | 사업자 등록번호: 633-10-02957, | 통신판매업신고증:2023-서울서대문-0693호 | 건강식품:제2023-0088388, 의료기기:1674, 구매안전서비스이용확인증:41-2007-0018678(특허청) | 발행인 : 남형철 | 편집인 : 진필곤 | 전화번호 : 02-6381-3131 Copyright dangnyoshinmu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