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 수국

  • 등록 2024.06.12 08: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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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 수국

 

 

-김송포

 

색동옷을 입은 적 있었나

어릴 때 설빔으로 입은 것 같기도 하고

화려한 얼굴을 지녔다는 말일진대

수국은 아직 피울 준비만 하고 있다

화려한 등단을 꿈꾸지 않았다

누가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좋아서 쓰던 시절이 있었다

 

아득한 시절에 까막눈처럼 길도 모른 채 걸어온 소신을 후회해 본 적 있다 일찍 시작할 것을, 학문의 길을 가 볼 것을, 지성의 탑에 도전하지 못한 시절이 왜 수국 앞에서 생각난 것일까 보름 후 너의 색깔을 보려다 수줍은 나의 모습이 비쳐서 철없이 웃어본다 그 시절을 문질러 핀 꽃봉오리가 그나마 다행, 색동옷 입을 날 오지 않아도 수국수국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천년의 시작, 2023)

 

-유규색동수국-

 

지금 강원도 산골 우리 집에서 이 글을 쓴다.

작년에 수국을 심었는데 동사했는지

심은 자리를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꽃을 피우지 않아도 살아만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 시인들은 스승이 있어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시 쓰는 것이 좋아서

까막눈처럼 혼자 시를 썼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좀 더 일찍 시작할걸, 학문의 길로 갈 걸,

후회하다가 이제 막 꽃봉오리가 돋아난 길가에 핀 수국 앞에 섰다.

우리 집 수국같이 피지도 못하고 죽은 것도 있는데,

색색의 꽃이 피지 않아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 않아도,

길가에서도, 들판에서도 핀 수국을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살아남아 묵묵히 시의 길을 가볼 수밖에

수국수국,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현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유심> 시 등단

2008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남형철 기자 hch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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