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

  • 등록 2023.05.10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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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효심 씨는 남편, 아이 둘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알뜰 주부이다.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아파트 부녀회에서도 인기가 많고, 아이들 학교에서도 학부형들과 관계가 좋다. 그럼에도 한번도 크게 나서거나 잘난 체를 하지 않는 교양 있는 부인이다.


  그런 최효심 씨가 1년 전부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수년 전부터 혼자 살고 계시던 최효심 씨의 시어머니가 가족 외식 날짜를 잊어버리거나 중요한 생일, 제삿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더니, 1년 전에는 아파트 비밀번호를 잊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계신 것을 이웃 주민이 연락해주어 귀가한 일도 있었다.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로 진단받은 후 최효심 씨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최효심 씨도 끝없는 사랑과 배려로 잘 보살펴 드리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시어머니의 치매 상태도 초기라 별 문제 없이 잘 지내는 듯 했다. 지역치매지원센터도 이용하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최근 시어머니의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서 점점 심한 치매 증상이 나타나게 되자, 최효심 씨는 점점 신체적, 정신적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다. 며칠 전 시어머니가 집 앞 슈퍼마켓에 나갔다가 길을 잃은 이후로는 집 밖에는 절대 혼자 못 나가시게 하였다. 집에서도 더 이상 집안일을 돕지 못하신다. 세탁기 버튼을 어떤 것을 눌러야 하는지, 전자레인지는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다 잊으셨기 때문이다. 이상 행동도 시작되어 본인의 통장, 인감을 자꾸 숨기시고는 찾지 못하시면서 최효심 씨 또는 손주들이 훔쳐간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씻는 것을 싫어하셔서 목욕을 한 번 할 때마다 온 가족이 달라 붙어야 겨우 힘겹게 몸을 한 번 씻길 수 있었다. 옷은 갈아입지 않으신지 1주일 째이골, 그나마 전에 입었던 옷을 세탁하려 하면 시어머니의 막강 방어를 뚫어야 한다. 요즘에는 하루 종일 5분 간격으로 최효심 씨를 부르기 때문에 최효심 씨는 시계가 필요 없을 정도이다. 시어머니에게 눈을 뗄 수 없어지면서 최효심 씨의 외출은 물 건너간지 오래이다.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집 밖으로 나가시는 것은 아닌지, 위험한 행동을 하시는 것은 아닌지, 안 그래도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불쾌한 언사나 행동을 하시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최효심 씨의 피로감은 극도에 달해 있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돕는다고는 하지만 다들 학교나 회사에 나가 있기 때문에, 최효심 씨만이 대부분의 시간을 시어머니와 보내고 있다. 최효심 씨는 점점 외딴 섬에 고립되어 원주민과 싸우는 개척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최효심 씨는 나름대로 남은 힘을 다해 정성껐 모시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친척들이 오거나 가족 모임에서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방에 불을 때주지 않아서 냉골에 산다느니, 밥을 세끼 챙겨주지를 않아서 항상 배고프다느니 하면서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정말 실감나게 꾸며대곤 하신다. 그럴 때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고, 리얼한 시어머니의 거짓말에 혹한 시누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느낄 때면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시어머니의 약 처방받기 위해 2~3달에 한번씩 찾아가는 병원이 최효심 씨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다. 주치의는 간병인을 두라고 하지만, 간병인이 드나들게 되면 이웃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지금도 가끔 밤에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이웃집 우편물을 가지고 오는 일이 종종 있어 이웃들이 약간씩 눈치를 채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동정의 눈으로 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최효심 씨는 주치의와 면담 때 항상 눈물이 난다. 최근에는 한 밤 중에 이유 없이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도 있다. 놀란 남편이 곁에서 위로하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점점 우울감이 심해지고 본인의 기억력도 점차 저하되는 느낌이 든다.


 

  최효심 씨가 겪는 문제들은 일부 치매 환자의 가족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중등도 이상의 치매 환자에서느 거의 대부분 이 정도의 일상생활 능력의 저하, 이상행동, 인지저하에 의한 증상이 나타나므로 환자의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에 빠지게 된다. 치매환자, 특히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나 루이체 치매 등은 겉으로 보기에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 간병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은 신체적인 부담감보다 더 힘든 정신적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상생활 능력의 저하로 인해 일거수일투족 모두 도와주어야 한다. 최효심 씨의 시어머니는 집안 살림 일은 돕지 못하는 정도이지만 다행히 옷을 입거나 식사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다. 그러나 병이 더 진행되면 옷을 입을 때도 도와주어야 하고, 가시를 발라낼 수 없는 생선은 아예 굽지 말아야 하며, 화장실에 갈 때를 쭉 지켜보다가 화장실에 가는 것 같으면 따라가서 뒤 처리도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이상행동에 의한 증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밤낮이 바뀌어 밤새 서성거리고 낮에 잠을 자는 경우는 허다하고, 밤마다 노래를 부르거나 5분 간격으로 소변을 보거나 가족(주로 주 보호자)을 불러댄다. 불결한 행동이 잦아지고 사소한 일에 상황에 맞지 않게 불같이 화를 내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으려는 경우도 많다. 쓸데없는 물건이나 음식 등을 꽁꽁 숨겨두고 찾지 못하면 가족들을 의심하여 다그치기 일쑤이고,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에 누군가가 숨어살면서 자꾸 쌀을 훔쳐가고 로션을 한 움큼씩 퍼간다는 도둑망상,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배우자가 밖에 다녀오기만 해도 바람이 났다고 생각하는 색정망상 등도 잦다. 이러한 이상행동에 의해  보호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마지막으롤 인지기능 저하가 심해지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가족들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한 때 사랑하는 가족이었던 사람의 인격과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자괴감과 슬픔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대한치매학회가 치매 환자의 보호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 능력 장애로 인해 조사 대상자 100명 중 80명 가까이가 간병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고, 실제 우울증으로 진단되기도 한다. 더 심해지면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해 환자 보호자의 기억력도 감소될 수 있다.

남형철 기자 hch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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