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이오틱스의 재발견

  • 등록 2023.05.21 12: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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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부제가 들어 있는 가공식품, 섬유질이 부족한 식단, 오염물질, 항생제를 비롯한 다양한 화학약품이 우리 몸의 자연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1983년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유익균의 하나인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plantarum이 미국인의 25%에서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도 검사대상의 약 절반에서만 대표적인 유익균이 검출되었다. 현대인의 장에는 유익균의 수가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유해균의 수가 증가했으며, 이러한 장내세균총의 불균형과 증가하는 면역질환은 서로 연관이 있다. 이에 따라 장에 부족한 유익균을 보충하여 질병의 예방·치료를 돕고,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의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박테리아로 질환을 치료한다고 하여 세균요법Bacteriotherapy, 박테리오테라피이라고 불리는데, 이때 사용되는 것이 바로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다.




  프로바이오틱스는 'pro'와 'biotics'의 합성어다. pro는 anti와 상반되는 '~를 위한for'이라는 의미고, biotics는 '생명life'을 뜻한다. 'for life'라는 의미의 프로바이오틱스는 '친생제親生劑'라고 번역할 수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라는 어원 자체가 항생제Antibiotics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충분한 양을 섭취했을 때 건강에 좋은 효과를 주는 살아 있는 균'으로 정의하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데 '몸에 유익한 균'을 총칭한다고 보면 된다. 유익균 대부분이 젖산과 같은 산성물질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전에는 '유산균'이 유익한 균의 대명사로 쓰였지만, 유산균이 아닌 다른 박테리아나 심지어 특정 대장균과 호모균도 몸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프로바이오틱스'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즉 프로방오틱스란 '유산균과 비유산균을 포함한 건강에 이로운 모든 살아있는 균'을 의미한다. 한국 식약청의 〈건강기능식품공전〉에도 유산균이 아닌 '프로바이오틱스'가 유익균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항생제는 균이 가지고 있는 성질 중 '다른 균의 성장을 저해하거나 죽이는 능력'을 이용하여 약으로 사용하는 경우고, 프로바이오틱스친생제는 균이 가지고 있는 성질 중 '서로를 위하고 도와주는 공생·상생 능력'을 이용하여 건강을 도모하는 접근방법이다. 비록 '프로바이오틱스'라는 단어의 역사는 항생제보다 짧지만 프로바이오틱스는 인류의 생활에 들어온 지 수천 년이 되었다. 

  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아주 오래 전부터 유산균은 우리 식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치즈와 요구르트부터 우리나라의 김치와 된장에 이르기까지 발효과정을 통하여 음식물의 부패를 막고, 맛과 영양가를 높이기 위해 프로바이오틱스가 활용되었다. 프로바이오틱스를 질환에 사용한 기록 또한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시대의 학자 플리니우스Gaius Plinius는 발효유가 장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아버지'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감염질환이 유해균 때문에 발생한다는 현대 감염의학의 토대인 '세균설Germ Theory'을 완성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고, 유익균이 유해균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프로바이오틱스 시대의 진정한 개막은 파스퇴르가 세상을 떠난 지 약 10년 후, 그의 연구소에 있던 뛰어난 두 명의 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와 헨리 티셔Henry Tissier에 의해 시작된다. 1906년 헨리 티셔는 설사병이 있는 아기의 장에 Y자처럼 생긴 균들의 수가 적어진 반면, 건강한아기의 장에는 이 균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관찰하게 된다. 그는 끝이 두 갈래 갈라진 형태를 의미하는 단어 '비피드bifid'에서 착안하여 이 균을 '비피더스균Bifidus'이라 이름 지었다. 티셔는 이 유익균이 설사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메치니코프는 락토바실러스 불가리쿠스균☞bulgaricus이 장내 유해균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음을 발표한다. 1907년에 출간된 《생명 연장Prolongation of Life》이라는 저서를 통해 유익한 장내세균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기한 자가중독설에 의하면, 노화는 장 속에서 일어나는 부패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때 프로바이오틱스는 부패균을 감소시키고 장내유익균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장 건강을 정상화하여 장수에 기여할 수 있다.

  이들의 발표 이후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연구가 의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아 프로바이오틱스 분야의 연구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정적인 이유는 1928년 세균학자 플레밍이 그 유명한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몸에 유익한 균으로 건강을 지킨다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콘셉트는 훌륭했지만, 당시 의술 수준으로 수많은 유익균 중 어떤 균을 얼마나 많이 섭취해야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를 밝혀내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시점에 항생제의 등장은 의학계의 관심과 흐름을 바꾸기 충분했다. 항생제는 다이너마이트에 비유될 정도로 균을 죽이는 효과가 확실한 뿐만 아니라 저렴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약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생제가 인류를 감염질환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항생제가 사용미국 된 지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들에 내성을 가진 균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미국 자료에 의하면, 항생제 내성균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수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환자보다 더 많다고 한다. 항생제 문제와 더불어 아토피, 암을 비롯한 면역 관련 질환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장내세균과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프로바이오틱스가 훼손된 현대인의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과 면역질환은 인간이 만든 인재人災다. 현대인의 장내세균은 항생제와 음식에 들어 있는 방부제와 같은 화학물질로 훼손되었고, 새로운 화학약품의 개발은 더 이상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손상된 자연은 자연의 힘으로만 회복이 가능하다. '세균은 인간의 적이 아닌 동지'라고 믿었던 파스퇴르의 시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프로바이오틱스는 과학이라는 눈을 통해 비로소 발견한, 자연인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남형철 기자 hch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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