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작가 박영율 예술탐방 1

  • 등록 2023.07.18 1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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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3일까지 서울 효창동 에프앤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소나무 작가' 박영율이 신작 '헬로 미켈란젤로' 앞에 서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그가 처음부터 소나무를 그린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1980년대. '5월 광주'를 주제로 한 미술전시회에 그림 한 점을 내놓은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어디론가 끌려가 흠씬 두둘겨 맞는 고통을 겪으면서 문득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무였다.

"소나무는 아니었어요. 성황당 앞에 서 있는 큰 나무 같은 이미지였는데, 그 나무가 나를 위로했다고 할까, 구원했다고 할까. 1988년 나이 서른에 연 첫 개인전의 타이틀도 '구원에 대하여'였는데, 신목(神木)이라는 주제로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서의 나무 작업을 선보였어요."

흔히 '소나무 작가'로 불리는 박영율 작가(58)의 작품에 소나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쯤 뒤인 1990년대 후반이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경기도 포천으로 작업실과 삶의 터전을 옮긴 1997년 이후 자신의 작품에 명확한 형태의 소나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송림(松林)에 둘러싸인 작업실 환경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소나무 본래의 형태적 아름다움과 상징성에 매료된 그가 소나무를 정신적 교감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리라.

'소나무 작가'라는 별칭이 보다 확고해진 건 2001년 그의 그림이 청와대 국무회의실에 걸리면서부터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기존에 걸려있던 '일월도(日月圖)'가 제왕적 통치의 상징이라는 비판이 일자 작품 교체를 추진했다. 이때 공모를 통해 박영율 작가의 소나무 그림 '일자곡선-합수'가 채택됐다. 가로 세로 4.5m, 3.5m의 대작 '일자곡선-합수'는 노무현정부 때까지는 국무회의실에 걸려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일자곡선
일자곡선



20년간 지속돼온 박영율의 소나무 그림은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소나무 본래의 형태와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자곡선' 초기 시리즈가 제1기라면, 소나무가 단일 색깔로 바뀌고 그림에 의자나 나룻배, 큐브 등 인공물이 등장하는 '일자곡선' 후기 시리즈가 2기에 해당한다. 그런가하면 제3기에 해당하는 '나에게로 귀환' 시리즈에서는 소나무의 형태가 더욱 변화무쌍해지고 색깔이 완전히 사라진 백화(白化) 상태에 이른다.

나에게로 귀환
나에게로 귀환



"컬러 소나무가 어떠한 대상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을 지닌 존재였다면 '나에게로 귀환' 시리즈의 백화된 소나무는 나의 작업이 자신만의 절대적 사유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색이 존재의 특정한 정신상태를 상징하기도 하고 특정한 삶의 형태를 은유하기도 한다면, 백색으로의 변화는 오욕칠정을 모두 내려놓은 무아(無我)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박영율 작가는 요즘 또 다른 단계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구원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소나무가 나 자신에게로 귀결되고 수렴된 뒤 이제 나를 넘어서는 '초(超)자아' 혹은 '탈(脫)자아'의 세계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초자아' 시리즈가 이런 변화를 반영한 작품들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 20년간 천착해온 소나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일부 보이고 있다.

'초자아' 시리즈의 하나로 이번 전시에 첫선을 보인 '헬로 미켈란젤로'나 '헬로 로댕' 등은 소나무를 조각상으로 대체한 작품들이다. 부처의 두상(頭像)이나 반가사유상이 소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초자아' 시리즈 계열의 작품들도 같은 의미로 작업한 최신작들이다. 소나무와 함께해온 박영율 작가의 작품들을 볼수 있다.

관리자 기자 pgjin546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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