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 등록 2024.01.10 11: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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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 당신을 위한 시>

 

   

 

산기슭에 비스듬 기대어 서 있는 고사목

이별의 고통도 잊은 지 오래

앉았던 새들도 흠칫, 날아가 버린다

발목에서 내려온 온기가 잠시 을씨년스럽다

 

천둥 번개 먹구름 빙점의 세월까지 다 쏟아내고

앙상한 가지를 풍장하는

서러운

상흔의 틈으로

두 영겁 사이에 끼인 덧없는 섬광

흔들고 흔들면서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렸을 때

그때가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진입하는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때

죽음의 질문을 완성하는 새로운 새벽이 탄생한다

 

고사목 밑동에서 여린 듯 흔들리고 흔들리는 푸르름

죽음과 삶이 맞물린 순간 눈이 부시다

   

*토마스 칼라일의 하나의 삶은 두 영겁 사이에 끼인 덧없는 섬광이다차용

 

-지하선 이때 왜 여자는 눈을 감을까(지성의상상, 2023)

 

   

 

나무는 자라면서 천둥 번개 먹구름 쏟아지는 눈보라를 온몸으로 버텨내고

마지막엔 꽃잎 하나, 잎새 하나를 떨구곤 고사목이 된다.

우리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따사로운 양지의 생뿐만이 아니라 우여곡절의 거친 파고를 헤치면서 나아간다.

자신의 출생, 성장, 또 자식의 출생 성장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고목이 되어있다.

튼실했던 가지로 감싸 안았던 아이들도 다 제 갈 길을 가고

그런데 다 죽은 줄 알았던 고사목 밑동 주위에 새롭게 태어난 자잘한 나뭇가지가

푸르름을 품고 넘실거린다.

마치 우리 인간이 흙으로 돌아간 후 새로운 새벽이 탄생하듯이,

인생은 두 개의 영원 즉,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쩍 빛나는 한순간의 섬광이다.

 

 

-박미산(시인, 백석, 흰 당나귀 운영)

남형철 기자 hchn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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