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6일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에게 오는 29일까지 근무지로 복귀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정부는 해당 기한까지 근무지에 복귀하는 전공의에게는 현행법 위반에 대해 최대한 정상 참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3월부터는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수사, 기소 등 사법절차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검찰과 경찰은 이날 실무협의회를 열고 의료계의 불법 집단행동을 신속·엄정하게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대한의사협회(의협) 핵심 관계자들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집행부를 대상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속한 사법처리를 하겠다며 복지부에는 검사를 파견했다.
정부와 의사들이 '강대강 대치'로 치닫는 가운데, 양측을 중재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의대 대강당에서 전공의들과 만나 이번 사태의 출구전략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직후에는 "전공의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현장을 떠나고 있는 것이며, 이를 돌리기 위한 대책은 협박이나 강제가 아니라 설득에 의해야 한다"며 정부에 타협을 촉구했다.
정부 역시 대화에 적극 임할 계획을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브리핑에서 "저희가 다각적으로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데 연결이 잘 닿지 않고 있다. 중간에 중재를 해주시겠다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께도 부탁을 드려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초 발표한 의대 증원 규모인 2천명에 대해서도 논의할 여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박 차관은 "불법상태를 풀고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한다. (증원 규모를) 대화의 논제로는 분명히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의협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오진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면서 증원 규모를 줄이면 협상할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 "진단이 틀렸는데, 약을 몇 알 줄 건지(증원을 몇 명 할 건지) 논의한다고 하면 의사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개원의 중심의 의협이 의대 증원, 전공의 집단행동 등과 관련한 정부의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시각은 정부나 의료계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복지부 박 차관은 이날 "의료계 안에는 개원가하고 사정이 많이 다른 곳들도 있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대표성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했고, 일부 의대 교수들은 "의협보다는 의과대학이나 대학병원의 수장이 더 대표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직 전공의 수는 23일 저녁 기준으로 100개 주요 수련병원 1만34명(80.5%)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이틀 전 기준 집계보다 749명이 늘었다.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의 수도 이틀 사이 847명 증가해 누적 1만2천674명(전체의 67.4%)이 됐다.
의대 정원과 관련해 의대 학장들의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교육부에 의대 증원 신청 연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지만, 교육부는 조사 기한을 연장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지난 22일 의과대학을 설치·운영하는 전국 40개 대학에 공문을 보내 2025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수요를 3월 4일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 서울 주요병원 인턴 90% '임용 포기'…심정지환자 '뺑뺑이 사망' 사례 나와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의료대란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더구나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이 될 '예비 인턴'의 임용 포기가 잇따르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수도권 빅5 대형병원의 예비 인턴 중 90%는 수련계약서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은 인턴 151명 중 90% 이상이 임용을 포기할 것으로 보고 있고, 삼성서울병원 역시 현재 신규 인턴 123명 중 대부분이 임용을 포기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인턴 132명 중 대부분이 수련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고, 서울대병원과 관련해서는 지난 22일 수련계약서 작성을 완료한 인턴이 올해 채용된 166명 중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확산하고 있다.
이화의료원 역시 신규 인턴 30∼40명 대부분이, 한양대병원도 인턴 67명 대부분이 수련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전공의에 이어 인턴, 전임의의 이탈마저 가시화하고, 남아있는 의료진의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더는 버티기 쉽지 않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전임의'들은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사이 외래 진료와 수술, 입원환자 관리, 야간당직 등을 도맡아왔는데, 이달 말 재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응진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순천향대 중앙의료원 특임원장)은 "내달 1일자로 인턴이랑 레지던트가 들어와야 하는데, 이들이 안 들어오게 되면 다음 주가 정말 '대란'의 시작"이라며 "이 상황이 지속하면 내달에는 수술 규모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원들은 신규 환자의 외래 진료와 입원, 수술 등을 일제히 줄이며 대응하는 중이다.
암 환자의 외래·입원 '항암치료'도 급하지 않을 경우 연기하고 있다.
수술을 40∼50%가량 연기·축소한 데 따라 입원환자도 많이 감소했다. 전공의들의 부재로 입원 환자를 적절히 관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반적인 재원 환자 규모를 줄이는 모양새다.
암 환자의 입원 항암이 축소·연기되면서 '암 병동' 규모도 축소 운영 중이다.
환자들의 불안감과 불만이 더 커지는 가운데 심정지 환자의 '뺑뺑이 사망' 사례도 나왔다.
대전에서 지난 23일 정오께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심정지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갔으나, 전화로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확인하다 53분 만에야 대전의 한 대학병원(3차 의료기관)에 도착한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병상 없음, 전문의·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 사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았다. 그가 최종 사망 판정을 받은 병원은 처음에 수용 불가 의견을 내놓은 곳이었다. .
대형병원인데도 암 환자가 장시간 응급실에 대기하며 고통을 겪는 사례도 나왔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암환자의 보호자는 "췌장암 말기인 친형이 열이 40도가 넘는 등 상태가 심각해 응급실에 왔는데, 응급실에서만 7~8시간을 대기했고 암병동에 입원하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속상해했다.
그는 "원래 응급실에 의사 10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2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며 "겨우 입원했는데, 예정됐던 치료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관련해서는 시민사회가 의료 현장에 복귀하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날 의료 약자인 한국아동복지학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각각 성명을 낸 데 이어, 이날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가 기자회견을 통해 의사와 정부에 대치 국면을 끝내고 대화를 통해 진료 정상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이날 성명에서 "위급환자까지 버리는 의사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며 "환자를 둔 절박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환자 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