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봉의 힐링여행(21) / 경북 경주 옥산서원
이팝꽃 흐드러진 5월의 옥산서원
글과 사진 / 송일봉(여행작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년)을 배향하기 위해 경주부윤 이제민이 1572년에 세웠다. 이듬해에는 ‘옥산’이라는 서원이름을 하사받으면서 사액서원이 되었고, 흥선대원군이 단행한 서원철폐령 때도 없어지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2019년에는 영주 소수서원,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논산 돈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의 주향자인 회재 이언적
옥산서원의 주향자인 회재 이언적은 1491년에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스물두 살 때인 1513년에 생원시에 합격하면서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514년에는 관직에 나갈 수 있는 문과에 급제를 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맡았던 주요 관직으로는 이조판서,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좌찬성 등이 있다. 조선 중종 때인 1522년에는 왕세자를 가르치는 세자시강원의 설서(정7품)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회재 이언적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왕세자는 1544년에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조선 12대 임금인 인종이다.
조선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친 회재 이언적도 ‘사화’를 피해가진 못했다. 조선 명종 때인 1547년에 발생한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양재역 벽서사건’이 빌미가 되어서 평안도 강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예순두 살 때인 1553년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퇴계 이황은 회재 이언적이 세상을 떠난 후에 쓴 추모의 글에서 “그를 가까운 곳에서 봤는데도 더 많이 묻지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도 걸려 있어
옥산서원의 정문은 역락문(亦樂門)이다. ‘역락문’이라는 이름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왔다. 글씨는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 역락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작은 수로가 앞을 가로막는다. 인근의 계곡물을 끌어들여서 만든 이 수로는 자유로우면서도 ‘형식과 절제’를 중시했던 옥산서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옥산서원의 강당인 구인당에 걸려 있는 ‘옥산서원’ 편액 글씨는 본래 아계 이산해가 썼다. 하지만 1838년에 발생한 화재로 구인당과 함께 편액도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현재는 추사 김정희가 1839년에 쓴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 옆에는 작은 글씨로 ‘만력갑술사액후이백육십육년기해 실화개서(萬歷甲戌賜額後二百六十六年己亥失火改書)’라고 쓰여 있다. 즉, “중국 명나라 신종 때인 갑술년 사액 후 266년이 되는 기해년에 다시 썼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가리키는 갑술년은 1574년이고 기해년은 1839년이다. 구인당 툇마루에서는 또 하나의 ‘옥산서원’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불에 타버렸다는 아계 이산해의 글씨다. 그런데 편액을 자세히 보면 한문으로 ‘구액모게(舊額摹揭)’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 글씨를 모사해서 걸었다”는 뜻이다.
*이팝꽃이 아름다운 자계천 계곡
옥산서원에는 구인당 말고도 유생들의 교육공간인 무변루, 유사(스승)들이 기거하던 양진재와 해립재,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민구재)와 서재(암수재),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체인묘 등이 있다. 그리고 동재 오른편에는 서원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고직사가 있다. 이 가운데 무변루는 지난 2022년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산오대’라 불리는 옥산서원 앞 자계천 계곡은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산’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화개산, 자옥산, 무학산, 도덕산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오대’는 계곡에 있는 세심대, 증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등을 가리킨다. ‘세심대’ 글씨는 퇴계 이황이 썼다.
옥산서원은 서원 앞 계곡에 놓인 외나무다리, 자그마한 폭포, 울창한 노송과 함께 5월의 이팝나무가 특히 인상적인 명승지다. 이팝나무는 정원수의 개념을 훨씬 뛰어 넘어 ‘풍치수’라 불리는 나무다. 풍치수란 “자연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나무”를 가리키는데, 새하얀 꽃들이 울창한 숲에서 다른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면 ‘정말 풍치수가 맞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옥산서원 앞 계곡인 자계천이다.
*옥산서원 근처에 있는 독락당
옥산서원 근처에 있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낙향해서 살던 곳으로 ‘옥산정사’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독락당에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독락당은 아계 이산해, 옥산정사는 퇴계 이황의 글씨다. 독락당 뒷마당에는 회재 이언적이 1532년에 심은 중국 주엽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의 가시가 ‘조각자’라는 한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조각자나’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락당은 ‘축경사상’을 뛰어 넘어 ‘차경사상’을 생활화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명소다. 특히 독락당 대청에 앉아 담장의 살창을 통해 계곡을 조망하려 했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압권이다. 이 작은 살창으로는 계절의 변화는 물론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가하면 살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독락당의 백미는 ‘계정(溪亭)’이라 불리는 휴식공간이다. 계곡을 향해 담장 바깥으로 건물 일부를 빼내면서 난간을 받치는 기둥을 자연석 위에 그대로 올려놓았다. 계곡 건너편에서 계정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누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찾아가는 길 : 새만금포항고속도로 서포항나들목⟶국도 131호선⟶지방도 68호선⟶국도 28호선⟶옥산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