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제가 몇 년 전부터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 가 없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다소 마른 체형을 가진 70대 중반의 남성이 중절모를 지긋이 눌러쓰고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환자는 동네 병원은 물론, 유명하다는 피부과도 다 찾아다녔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가 무슨 도움을 드릴 수가 있을까 걱정부터 되었지만 천천히 문진(질문을 하면서 환자의 증상에 대해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진료기법)을 진행했다.
"약을 드셔도 증상이 똑같이 나타나셨나요?" 약 말고 다른 치료도 시도해보셨나요?"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으면 잠시 괜찮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가려워서 잠을 설쳤어요. 긁다가 밤을 새운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주기적으로 목욕탕에 가서 세신사에게 때를 밀었어요. 그럼 잠시 시원하고 괜찮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환자는 약 외에도 보습제, 연고, 한방치료까지 다 해봤지만 별로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진료를 온 것도 큰 기대를 하고 왔다기보다는 혹시나 다른 치료법이 있을까 해서 온 것이라며 말을 줄였다.
이미 여러 병원에서 가려움증에 대한 거의 모든 치료를 받아 본 환자에게 특별히 처방할 약은 없었다. 항히스타민제와 몇 가지 약 정도를 고민하다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환자분 이렇게 하시지요. 저도 다른 병원에서 드셨던 약 말고는 따로 처방해드릴 약이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 가서 때 미는 것은 하지 마시고, 손발 이외에는 비누 칠도 당분간 하지 말아 보세요. 그리고 목욕 후엔 반드시 보습제를 충분히 발라보세요."
"원장님이 말씀하신 것들 다 해봤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서 지금은 제 마음대로 경험상 좋아지는 느낌이 있으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문진을 통해 결정적인 사실을 확인했다. 환자는 며칠간 치료를 따라 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안되면 포기하고,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분 오랫동안 여러 가지 치료를 해 보신 거 같은데 가장 기본적인 치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연세가 드시면 피부가 약해지고 건조해져서 외부 자극에 과민해질 수 있거든요. 일단 피부 보습을 꾸준히 하시고 때 미는 거는 다시 말씀드릴 때까지 멈추세요. 한 달 후에 다시 보겠습니다."
그렇게 진료 후 한 달이 지나 다시 내원한 환자는 표정부터 밝아 보였다. 환자는 이후 수개월간 같은 방법으로 피부를 관리하였고, 현재 가려움증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계신다. 가끔 고혈압약을 처방받으러 오시는데 지금도 내가 하는 첫 번째 질문은 "가려운 거는 좀 어떠세요?"이다.
앞서 소개한 환자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생활하면서 가려움증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피부는 겉부터 표피층(Epidermis), 진피층(Dermis), 피하지방(Subcutaneous fat)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피층은 가장 겉층부터 각질층, 투명층, 과립층, 유극층, 기저층의 5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곳엔 신경과 혈관이 없어 다치더라도 피가 나지 안하고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각질층은 피부 장벽이라고 불리며 외부 자극이나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1차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다. 표면은 피지선에서 분비된 기름 성분인 피지가 덮고 있어 피부를 보호하고 건조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며 표면 안쪽에서는 각질층을 구성하는 각질세포 사이를 세라마이드, 지방산, 콜레스테롤 등이 채우고 있어 피부 안의 수분이 피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피부의 보습을 유지시키게 된다.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크게 전신 질환과 피부 질환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외에 항생제, 소염제 등의 약물과 음식이 원인인 경우도 종종 있다. 전신 질환은 만성 신부전, 황달을 일으키는 간 담도 질환, 당뇨병, 갑상선기능항진증과 저하증 등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가려움증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피부 질환은 아토피 피부염, 접촉성 피부염, 기타 습진성 피부염과 두드러기, 옴, 이, 곰팡이에 의한 감염이나 벌레물림 등에 의해서 발생한다. 앞서 설명한 환자의 경우처럼 피부건조증이 있으면서 피부 장벽이 약해진 상태에서 잦은 목욕과 때밀이 등 주기적으로 과도한 자극을 주게 되면 여러 치료에도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가려움증으로 피부를 심하게 긁으면 피부에 상처가 나고 심하면 피부궤양, 색소침착 같은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어 일단 가려움증을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치료제는 크게 전신투여제(경구약과 주사제)와 국소투여제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전신투여제는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가 쓰인다. 주로 항히스타민제를 사용하게 되며 가려움증과 발진이 심하거나 급성으로 두드러기 등이 나타나는 경우 스테로이드를 경구 또는 주사제로 짧은 기간 동안 사용해 볼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는 1세대, 2세대, 3세대로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는 졸음과 입마름, 변비 등의 부작용이 적은 2, 3세대 항히스타민제를 주로 사용한다.
또한 가려움증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할 때 악화될 수 있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카페인 함유된 커피, 홍차, 초콜릿 등과 알코올은 가려움증을 악화시킬 수 있어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피부를 시원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어 멘톨이 함유된 로션 등도 사용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려움증은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원인을 회피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목욕과 사우나를 자주 이용한다면 이용횟수를 줄이고 저자극 세정제를 사용하는 등의 사소한 노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목욕이나 세안 후 피부가 마르기 전에 복습제를 충분히 바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출처: 사소한 건강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