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호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조교수는 임신성 당뇨병을 주로 진료한다. 한국 임신성 당뇨병 의료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같은 병원 장학철 교수 뒤를 잇고 있다.
이번 내분비 추계학술대회 및 학연산 심포지움 강연에서 임신 당뇨병 후 태아,산모 합병증 관리 중 분만 합병증과 장기적 합병증관리 및 산모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 하였다.. 그는 대한당뇨병학회 임신당뇨병연구회 간사로서 학회를 대표해 2023년 임신성 당뇨병 진료 지침을 집필했고, 2025년 진료 지침도 집필할 예정이다.
문준호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임신성 당뇨병은 2형 당뇨병과는 별개 질환이라고 할만큼 독특하다. 2형 당뇨병과는 진단 기준이 다르고 치료, 관리 방법도 다르다. 진료 시간이 길고 환자 심리 상태 등 의사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2형 당뇨병에 비해 의료 분쟁도 잦다. 의사가 진료비를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국내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서는 임신성 당뇨병만을 진료하는 의사가 거의 없다.
그는 대한당뇨병학회 임신당뇨병연구회 간사로서 학회를 대표해 2023년 임신성 당뇨병 진료 지침을 집필했고, 2025년 진료 지침도 집필할 예정이다. 임신성 당뇨병에 대한 진료 지침을 별도로 마련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임신 중에 혈당이 특히 많이 올라간 상태를 임신성 당뇨병이라고 한다. 혈당이 당뇨병 기준을 넘어서면 출산 시에 합병증이 생길 수 있어 의학적으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다(多)출산 여성과 당뇨병=문 교수는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 이상 임신성 당뇨병을 연구해왔다. 2015년 국제 내분비 학술지인 <JCEM>(Journal of Clinical Endocrinology & Metabolism)에 논문을 발표한 후 현재까지 10편 이상의 임신성 당뇨병 관련 논문을 여러 당뇨병 학술지에 보고했다. 그가 처음 낸 논문의 제목은 ‘임신성 당뇨병 산모의 출산 후 체중 변화에 따른 2형 당뇨병 발생 및 콜레스테롤 등 대사적 표현형 변화’다.
그는 작년 12월 국제 학술지 <EMM>(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 실험분자의학)에 ‘다산 베타세포 노화 및 체중 감소에 의한 베타세포 기능 개선’을 발표해 내분비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는 다(多)출산 여성은 임신성 당뇨병 발생 가능성이 높지만, 체중 감소를 통해 당뇨병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문 교수는 “다출산은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정말 그런지, 그 기전은 무엇인지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며 “이 연구의 목적은 다출산이 산모에게 대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고, 대사적으로 나쁜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문 교수와 연구진은 4회 이상 출산한 다출산 여성(79명)과, 3회 이하 출산한 일반 출산 여성(376명)으로 나눠 이들의 체중, 췌장 베타세포 기능, 인슐린 민감성 지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다출산 여성은 일반 출산 여성에 비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터세포의 기능과 인슐린 민감성이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교수는 연구를 확대해 다출산 여성도 4년 동안 체중을 2.5㎏ 정도 줄이면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이 향상되고 인슐린 민감성 지수도 개선되는 결과를 확인했다. 출산 2개월 후와 4년 후를 비교한 결과, 체중이 증가한 여성들의 췌장 베타세포 기능은 30%, 인슐린 민감성 지수는 18% 감소했지만, 체중이 감소한 여성들의 췌장 베타세포 기능은 14%, 인슐린 민감성 지수는 25% 향상됐다. 다출산으로 당뇨병 위험이 커지더라도 출산 후에 체중을 줄이면 다시 췌장 베타세포 기능이 좋아져 당뇨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모유 수유가 당뇨병 줄여=체중을 줄이면 왜 베타세포 기능이 좋아지고 인슐린 민감성이 향상될까. 문 교수는 “일반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면 당지질 독성, 즉 고혈당이나 고지혈증에 의한 세포 독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췌장 베타세포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며 “체중을 줄이면 세포 독성 레벨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기 때문에 췌장 베타세포 기능이 좋아지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2020년에도 학계와 언론이 크게 주목한 논문을 발표했다. 산모가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면 산모의 베타세포 기능과 인슐린 감수성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였다. 논문은 국제 학술지 <STM>(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게재됐다. 문 교수는 “수유를 하면 세로토닌이 작용해 췌장 베타세포 기능을 좋게 해 당뇨병 위험을 줄인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연구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세로토닌은 뇌에 작용하는 행복 호르몬으로, 다른 장기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연구를 통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췌장 베타세포에서 세로토닌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수유를 하면 세로토닌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021년에는, 임신성 당뇨병을 가진 산모에서 태어난 아이가 5세 되는 시점에서 체지방률이 훨씬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대한당뇨병학회 공식 학술지 <DMJ>(Diabetes & Metabolism Journal)에 발표했다. 문 교수는 “이 연구는 대사질환이 세대를 넘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였다”고 했다. 그는 2022년에는, 임신한 여성이 근육량이 많으면 당뇨병 위험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 <DMJ>에 발표하기도 했다. 당뇨병과 근육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임신성 당뇨병과 근육에 대한 연구는 처음이었다.
◇임신하면 혈당이 올라가=문 교수는 “임신 중에는 혈당이 조금만 높아도 출산 합병증이 올라가기 때문에 혈당을 엄격하게 조절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당뇨병 진단 기준은 공복혈당 126mg/dL 이상이다. 그러나 임신성 당뇨병 기준은 이보다 훨씬 엄격해, 공복혈당 92mg/dL만 넘어도 진단될 수 있다. 문 교수는 “공복혈당 92mg/dL는 일반인에게는 정상 수치이지만, 임신 중에는 생리적으로 공복혈당이 다소 떨어지고 식후혈당이 많이 올라가기 때문에 공복혈당을 엄격하게 본다”며 “일반적으로 식후혈당은 공복혈당에 비해 30~50 정도 더 높지만 임신 중에는 심한 경우 2배 이상 더 높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임신성 당뇨병 클리닉 운영=문 교수는 병원에서 1형/임신성 당뇨병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클리닉에는 교육 전담 간호사를 둬 환자의 당뇨병 관리를 돕고 있다. 문 교수는 클리닉을 운영하는 이유를 길게 설명했다.
“1형 당뇨병과 임신성 당뇨병은 2형 당뇨병과는 완전히 다른 병이기 때문에 진료 형태가 다르다. 2형 당뇨병은 혈당이 안정적일 경우에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기존에 복용하던 약을 재처방하면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1형 당뇨병은 착용 중인 연속혈당측정기 데이터를 확인하고 그 데이터에 따라서 인슐린 펌프를 조정하는 교육을 하는 등 챙길 게 매우 많다. 1형은 2형에 비해 복잡도가 거의 100배는 된다. 임신성 당뇨병 또한 긴 환자 상담이 필수다. 환자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하는 걱정을 비롯해 많은 질문을 한다. 울면서 상담을 시작하는 환자도 있다. 임신성 당뇨병은, 태아에 대한 영향이 우려되어 먹는 약을 쓸 수가 없고 인슐린만으로 혈당을 조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환자 교육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1형 당뇨병이나 임신성 당뇨병 환자는 2형 당뇨병 환자와 시간대를 분리해서 진료한다.”
전담 간호사는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린 펌프 등 당뇨병 기기 사용법을 교육한다. 영양 상담도 한다. 환자가 동의할 경우 환자의 연속혈당측정기 데이터를 전담 간호사가 원격으로 모니터링한다. 그 과정에 문제가 발견되면 환자에게 연락을 취해 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현재 1형 당뇨병 환자 교육은 정부의 1형 당뇨병 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 지원금으로 운영하고 있어 환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신성 당뇨병 환자는 회당 5만원 내외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문 교수는 “정부 지원이 1형 당뇨병에 국한되어 있어서 아쉽지만 이것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 1형 당뇨병은 전담 간호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신성 당뇨병도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지원이 부족한 ‘사각지대’ 질환이기 때문에 연속혈당측정기 지원 등 산모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 교수는 “1형이나 임신성 당뇨병 환자들은 보다 전문적인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신성 당뇨병의 경우 출산에 임박해서 대학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혈당관리가 잘 되지 않고 태아의 상태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환자를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