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은 늘 싸락눈보다 내리는 속도가 더뎠다
싸륵싸륵 좁쌀처럼 떨어지는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함박눈에서 다시 싸락눈으로 변했던 겨울이 지나간 그해 봄에도 내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움은 아직 허공에 떠 있는 함박눈이었나보다
어쩌면 내 사랑은 마지막 함박눈이어서 더 느리게 지상에 도착하거나 뜨거워 이미 빗물로 녹아내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올해 봄에도 함박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혼자 저문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는 중년의 모습만 보였다
-김기준 고백』(실천문학, 2023)
우린 좁쌀처럼 떨어지는 싸락눈 같은 사랑이 아니라
온몸이 펑펑 젖는 함박눈 같은 사랑을 꿈꾼다.
그런 사랑이 나에게 찾아올까?
내 청춘의 봄에 그를 기다렸지만,
그 사랑은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빗물로 녹아내렸나 보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고 또다시 겨울이 와도
나에게 함박눈 같은 사랑이 찾아오지 않았다.
초봄, 어느덧 중년이 된 나는 혼자 저문 골목을 천천히 걸어간다.
혹시나 함박눈이 쏟아질까? 하늘을 바라보면서,
-박미산(시인, 백석, 흰 당나귀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