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매화 향기
-노진화
일주문 들어서니
홍매화 붉은 입술
살포시 열고 있었네
수양매 배꼽에서 나오는 향기
아득해졌네
내 마른 입술 끝
다정한 꽃 입술 스치니
내 안의 부족한 것들 크게 부풀었네
가령 사랑의 열망 같은,
한 번도 어루만지지 못한
그대 마음 같은,
매화 향기 발끝 따라왔네
당신에게 전해 줄
밤의 향기
『외로운 사람을 그림자가 길다』, (도서출판 그루, 2023)
不是一番寒鐵骨(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이 시는 당나라 고승 황벽 선사의 열반송으로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 없이는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추웠던 겨울을 이겨내고
곳곳에 매화가 피고 있다는 전갈이 오간다.
화자는 월정사에 피어있는 붉은 매화와
축축 늘어진 백매화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뼛속 깊이 상기한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매화의 고매한 지조와 매화꽃의 향기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며 돌아오는 길.
매화 향기가 화자의 발끝까지 따라왔다.
이 향기를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당신들에게 보낸다.
매화 향기 가득한 봄을 맞이하시길,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