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물들다
-송경동
정말 아름다운 말
사도 바오로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2000년 전 사도 바오로가 살던 그 시절에도
누군가에게 빚을 지우며 사는 유산계급들이 있었다는 말
평생 무산계급으로 살다 허리 ㄱ자로 굽은
엄니는 자주 살아온 날들을 회상하시지
누군들 빚을 지며 살고 싶었겠니?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주)아시아, 2023)
2000년 전 사도 바울이 살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옛날보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선 그 계급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평생 땅과 씨름하시던 어머니의 허리가 ㄱ자로 꺾였는데도
노동의 대가는 빚뿐이듯이,
부가 있는 사람은 대대손손 부가 전승되고 부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빚을 껴안고 산다.
그러므로 무산계급 사람들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다.
사랑의 빚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빚도 지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리적인 빚에 허덕이더라도 사랑의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면
오히려 풍요롭고 편안해진다.
부를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아귀다툼하는 것이 불쌍해 보이고
권력이 일장춘몽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탐하는 자가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불쌍해 보인다.
영적인 채무 의식은 물리적인 채무를 넘어
이 세상을 사랑으로 아름답게 물들인다는 것을 알면
그들과 이 사회가 좀 더 평화로울 텐데 말이다.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현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