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 수국
-김송포
색동옷을 입은 적 있었나
어릴 때 설빔으로 입은 것 같기도 하고
화려한 얼굴을 지녔다는 말일진대
수국은 아직 피울 준비만 하고 있다
화려한 등단을 꿈꾸지 않았다
누가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좋아서 쓰던 시절이 있었다
아득한 시절에 까막눈처럼 길도 모른 채 걸어온 소신을 후회해 본 적 있다 일찍 시작할 것을, 학문의 길을 가 볼 것을, 지성의 탑에 도전하지 못한 시절이 왜 수국 앞에서 생각난 것일까 보름 후 너의 색깔을 보려다 수줍은 나의 모습이 비쳐서 철없이 웃어본다 그 시절을 문질러 핀 꽃봉오리가 그나마 다행, 색동옷 입을 날 오지 않아도 수국수국
-유규색동수국-
지금 강원도 산골 우리 집에서 이 글을 쓴다.
작년에 수국을 심었는데 동사했는지
심은 자리를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꽃을 피우지 않아도 살아만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 시인들은 스승이 있어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시 쓰는 것이 좋아서
까막눈처럼 혼자 시를 썼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좀 더 일찍 시작할걸, 학문의 길로 갈 걸,
후회하다가 이제 막 꽃봉오리가 돋아난 길가에 핀 수국 앞에 섰다.
우리 집 수국같이 피지도 못하고 죽은 것도 있는데,
색색의 꽃이 피지 않아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 않아도,
길가에서도, 들판에서도 핀 수국을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살아남아 묵묵히 시의 길을 가볼 수밖에
수국수국,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현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