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한 가지 전제를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 해석은 글을 쓰는 사람의 관심과 전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음악가 이야기를 하면 현악4중주의 계보 가 중심이 되고, 피아니스트가 하면 피아노 문헌이 전면에 나옵니다. 요즘 방송되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봐도 패널의 성향에 따라 같은 작곡가가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 글도 독자 여러분이 알고 계신 내용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가능한 한 검증된 기록과 많은 사람 이 동의하는 견해를 중심으로, ‘사망 원인’이라는 공통의 축 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큰 흐름을 대략 나누면, 바로크에서 고전 주의, 그리고 낭만주의로 넘어옵니다. 바로크의 중심이 이탈리아였다면, 고전주의의 무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특히 빈 이었습니다. 이후 낭만파로 넘어오면서 파리가 음악가들의 중심지가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의 중심지가 이동하는 이유가 단지 문화적 취향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쟁 과 정치가 도시의 ‘안전’과 ‘후원’을 바꾸고, 그곳으로 예술가 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전후의 유럽에서 파리 는 상대적으로 안전했고, 전쟁에서 승리한 뒤의 파리는 축제 분위기였으며, 살롱 문화가 정착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 다. 예술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에서 꽃피는 법입니다.

이제 ‘죽음’이라는 렌즈로 유명 작곡가들을 다시 봅니다. 음악사의 ‘고전주의 꽃 ’으로 불리는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중, 가장 장수한 사람은 하이든입니다. 77세. 당시로서는 드문 장수였습니다. 반 면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너무 이른 죽음’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낭만주의 시대 로 넘어가면 더 짧은 생이 흔해집니다. 슈베르트는 31세, 멘델스존 38세, 쇼팽 39세, 슈만 46세. 모차르트의 죽음, 천재는 많았지만 천재 요절의 법칙을 벗어난 이는 드물었습 니다.
모차르트의 사망 원인은 여전히 여러 가설이 존재합니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독살설은 대중적으로 강력하지만, 역사학자들이 무게를 두는 쪽은 과로, 영양 상태 악화, 감염성 질환이 겹치면서 고열과 전신부종, 신부전(요독증) 양상으로 악화되었을 가능성입니다. 당시에는 항생제도, 수액도, 집중치료도 없었습니다. 그 시대의 고열은 지금 보다 훨씬 치명적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차르트는 반짝반짝 작은 별’부터 지하철에서 흐르는 ‘터키 행진곡’, 삶의 끝을 음악으로 채워 준 작곡가입니다. ‘반 끝에 울리는 ‘레퀴엠’까지. 그런데 그 모든 음악을 남긴 사람 은 35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은 57세로 ‘평균은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삶의 질은 결코 평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교 적 이른 나이부터 난청을 겪고, 말년에는 간질환과 복 수, 전신 쇠약을 보였습니다. 기록을 종합하면 간경화의 합병증, 특히 식도정맥류 파열 같은 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날이라면 금주, 간질환 관리, 출 혈 예방 치료로 생명을 연장할 여지가 있었겠지만, 당시에 는 ‘술을 좋아하는 천재’의 종착역이 너무도 흔한 길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장면도 있습니다. 베토벤의 장례에 빈 시민 수만 명이 몰렸고, 그 앞자리를 지킨 인물 중 하나가 슈베르트였습니다. 슈베르트는 평생 베토벤을 멘토로 여겼고, 유언 대로 베토벤 옆에 묻혔습니다. 음악사의 계보는 이렇게 살 아 있는 사람들의 존경과 애도로 이어집니다.

낭만파로 넘어오면 질병의 풍경이 확 바뀝니다. 이 시대의 대표 사망 원인은 결핵과 감염병, 그리고 정신질환입니다. 슈베르트는 쓰쓰가무시(발진티푸스)로 기록되지만, 그는 매 독에 시달렸던 흔적이 있습니다. 당시 매독은 ‘치료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치료법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전까지, 수은 치료 같은 위험한 시도가 오히려 중독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음악사가들은 슈베르트가 매독의 말기 합병증으로 고통받기 전에 다른 열병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차라리 축복이었다”는 냉혹한 표현까지 남겼습니다. 의사로서 듣기 불편한 말이지만, 당시 질병의 잔인함을 생 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쇼팽은 ‘아이돌 스타’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사랑받았지만, 결핵은 그의 삶을 서서히 갉아먹었습니다. 결핵약이 없 던 시대에 치료는 공기 좋은 곳에서의 요양이 전부였습니다.
쇼팽이 파리에서, 또 마요르카 섬에서 남긴 작품들에는 ‘낭 만’만큼이나 ‘호흡의 고통’과 ‘쇠약’이 배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빗방울 전주곡도 결국 그런 시간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쇼팽은 39세에 결핵과 빈혈로 세상을 떠납니다. 만약 항결핵제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음악사는 얼마나 달라졌을 까요. 의학의 발전은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예술의 양을 늘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 한 명의 낭만파 거장 슈만은 질병이 조금 다릅니다. 그 는 당대에 날카로운 평론가였고, 음악 잡지를 만들며 후배 를 발굴한 기획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조현병 혹은 중증 기분장애로 추정되는 증상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오늘날이라면 약물치료 와 심리치료, 가족 교육으로 더 안전하게 관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당시에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과 격리만 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재의 내면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 지, 그리고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편 장수한 음악가들도 있습니다. 헨델은 74세, 바흐는 65세, 베르디는 90세까지 살았습니다. 바흐와 헨델은 말년 에 같은 안과의사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안과 수술은 위험했고 결국 실명 상태에 이른 뒤 뇌졸중으로 생 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흔한 수술이지 만, 그때는 생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독일에서 태어난 두 사람, 바흐와 헨델이 생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 했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브람스는 또 다른 ‘현대적’ 죽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간질환, 특히 간암(간세포암)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 습니다. ‘3B’로 불리는 바흐–베토벤–브람스 중 베토벤과 브람스 두 사람 모두 간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감염 병의 시대에서, 생활습관병의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이 음악가들의 사망 원인에서도 보이는 셈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사망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많은 인물 중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콜레라로 기록되었지만, 사회적 스 캔들(동성애자)을 피하기 위한 자살설이 유력하게 거론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그 시대가 개인의 성정체 성과 사생활을 얼마나 잔인하게 억압했는지, 그 억압이 정신적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에도 정신 건강 문제와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렇게 음악가들의 죽음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사의 계보 가 곧 의학사의 연대기처럼 보입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대 에는 감염이 치명적이었고, 결핵약이 없던 시대에는 휴양이 치료의 전부였고, 정신의학이 미성숙했던 시대에는 천재가 병원에 격리된 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위생과 영양이 개선되면서 인간은 더 오래 살게 되었고, 동시에 간질환과 암처럼 ‘현대적 질병’이 예술가의 말년을 결정했습니다.
클래식을 아는 것은 곡의 제목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음 악이 태어난 시대와 인간을 함께 이해하는 일입니다. 배경 을 알면 음악이 더 재밌어집니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던 분 이라도, 이 글이 조금은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편식을 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건 건강만이 아니라, 다 양한 음식을 즐길 행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낯설다는 이유로 클래 식을 멀리하면, 인류가 축적한 감정의 언어를 한 통째로 놓 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보스턴에서 연수 하던 시절 누군가 “보스턴 생활을 글로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보스턴이라는 도시의 분위기와 음악가의 이야기를 엮 어 ‘보스톤과 음악가’ 라 는 제목으로 15편의 글을 제 블로그 에 올렸습니다. 음악가의 삶은 특정 도시의 공기, 거리, 살롱, 극장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재의 음악은 영원하지만, 천재의 몸은 유한했습니다. 그들의 짧은 생이 남긴 긴 음악을 오늘 우리가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 의학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인지 도 모릅니다.
태영21내과의원 양태영 원장/출처 엔도저널 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