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암 발병의 유사성
태아 발생 과정과 암 발생 때 일어나는 현상은 매우 비슷하다. 태아 때 작동되는 유전적(Genetic) 프로그램과 암세포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의 발생 과정과 암의 발생 과정은 실제로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임신을 보자. 난소에서 배란된 난자가 정자를 만나 수정된다. 수정된 1개의 수정란이 60조 개 세포로 이루어진 태아를 만들기 위해서 양적 성장을 해야 하므로 곧바로 세포 분열을 시작한다. 수정된 난자는 약 30시간쯤 지나면 수정란의 첫 번째 분열이 시작되어 2개로 분열된다. 이때의 분열을 난할(卵割, Cleavage)이라고 한다.
난관에서 일어나는 수정란의 세포분열을 난할이라고 하는 이유는, 수정란이 난관이라는 공간적 제한에서 세포분열을 하기 위해서는 숫자는 늘리되 분열이 거듭될수록 세포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다. 수정 후 수정란은 분열을 하면 할수록 세포의 수는 늘지만 크기는 계속 줄어드는 분열, 즉 난할을 한다.
그러나 자궁에 착상한 수정란은 난할 형태의 분열이 아니라 덩어리(Blastomere, 할구)째 나누는 분할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포 하나하나가 각 장기의 세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즉 배아줄기세포가 된다.
여기서 난할의 영문 표기인 Cleavage는 ‘두 개로 나누다’는 뜻이다. 수정란은 난할을 거듭하여 한번 분할되면 2세포기, 두 번 분할되면 4세포기, 8세포기, 16세포기, 32세포기, 64세포기 등 계속해서 세포의 수가 늘어난다. 세포가 늘어나 각 할구를 셀 수 없는 단계가 되면 자잘한 세포들이 꽉 들어찬 산딸기 모양으로 변하게 된다. 이 단계를 상실배(Morula, 桑實胚)라 부른다. 마치 산딸기나 뽕나무 열매인 오디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난할이 거의 끝나가는 이 단계가 지나면 분할된 세포군들은 모양을 바꿔 외측을 둘러싸는 영양층과 안쪽의 내부세포괴로 나누어진다. 이를 배반포(Blastocyst, 胚盤胞)라 한다. 즉 배반포는 속이 빈 구 형태의 세포 덩어리다.
인간을 비롯한 다세포동물의 발생 초기의 난할기가 끝난 배(胚)는 아래쪽에 세포괴가 있고 위쪽은 비어 있어 마치 공과 같은 형태다. 이 상태가 배반포로 불리는 포배(Blastula, 胞胚) 상태다. 대개 6일쯤 되면 수정란은 포배 상태가 되어 자궁벽에 착상하는데, 이것을 임신이 되었다고 한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형성된 수정란은 난관을 통과해 자궁에 안착한다. 이를 착상이라 한다. 난관은 혈관 자체가 차단돼 있으니 산소가 없다. 산소는 착상 후 태반이 만들어지고 혈관이 만들어져야 그때부터 산소가 들어오게 된다.
자궁에 착상한 배반포(Blastocyst)는 내세포괴(Inner cell mass)와 세포영양막(Trophoblast)으로 분화된다. 그래서 내세포괴는 태아(Embryo)가 되고 세포영양막은 태반이 된다. 세포영양막은 배아기 때 모체의 태반을 구성하는 배반포의 외형을 형성하는 특정 세포를 의미한다.
분화란 무엇인가?
여기서 분화에 대해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분화란 어떠한 세포가 다른 특징을 갖는 세포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다세포 생물은 복잡한 조직을 형성하는 발생 과정 중에 분화가 여러 번 일어난다.
착상이라고 하는 과정은 세포영양막이 태반을 만들기 위해 자궁 내막을 뚫고 들어가 산소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엄마의 혈관(Vessel)을 찾아가면서 혈액을 통해서 영양분을 받고,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수정란은 분할을 통해 2세포기, 4세포기, 8세포기, 16세포기, 32세포기, 64세포기, 상실배를 거쳐 배반포가 된다. 자궁에 착상한 배반포는 내부세포괴와 세포영양막으로 분화되고 내부 세포괴는 삼배엽(내배엽, 외배엽, 중배엽)으로 나뉘면서 분화가 또 시작된다.
배반포의 안쪽에는 내세포괴라고 하는 세포들의 덩어리가 있는데, 이 세포들은 세포분열과 분화를 거쳐 배아(Embryo)를 형성하고, 배아는 임신기간을 거치면서 하나의 개체로 발생하게 된다. 배반포내에 있는 내세포괴의 세포들이 배아줄기세포다.
간 줄기세포는 간세포를 만들고 심장 줄기세포는 심장 세포를 만들고 신경줄기세포에서는 신경세포가 만들어진다. 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지는 이들 세포를 체세포라 하는데 체세포는 분화된 세포이다.
이와 같이 배아줄기세포는 체세포를 만들고 체세포는 증식과 분화를 반복해 태아의 여러 장기를 만든다. 배아줄기세포는 모든 장기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만능성(Pluripotent)세포다. 배아줄기세포는 배아의 발생과정의 세포인데, 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나 아직 분화되지 않은 '미분화'세포이다. 배아줄기세포가 분화되면 체세포가 된다.
태아 때 작동되는 유전적(genetic) 프로그램과 암세포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유사하다 했는데 배아 때는 어떤 유전자들이 작동되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본다면 수정 직후인 2세포기, 4세포기, 8세포기 때는 Oct4, Sox2. Nanog와 같은 배아유전자가 발현되고 착상 직전 배반포 배아에서는 SALL4(샐4) 배아유전자가 발현되어 분화를 억제한다.
암의 증식은 어떤 과정을 밟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분화란 어떠한 세포가 다른 특징을 갖는 세포로 바뀌는 것인데 분화가 억제된다는 말은 예를 들면 간 줄기세포는 분화하면 간세포가 되는데 분화가 억제되므로 증식만 한다는 이야기다. 암 세포란 증식만 하는 미분화 세포다. 미분화 세포는 줄기세포다.
암 줄기세포(Cancer Stem Cell, CSC)는 체세포가 배아줄기세포로 되돌아간 것이다. 암세포는 체세포가 배아줄기세포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 때 작동되는 유전자가 발현된다. 따라서 암세포는 배아 때 발현되는 유전자를 발현하여 분화를 억제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고 암 세포를 생산한다.
암 줄기세포는 어떻게 생기나? 정상 줄기세포가 추가적인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암 줄기세포가 된다. 또 암 줄기세포로부터 유래한 분화된 세포는 암 줄기세포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성질을 갖게 된다.
만일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여 암 세포를 만드는 암 줄기세포를 100% 암 세포로 분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또 암 줄기세포를 배아줄기세포로 역분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체세포가 배아줄기세포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역분화(Dedifferentiation)라 한다.
역분화하는 방법은 있는가? 암 세포는 배아에서 발현되는 배아 유전자를 다시 발현하여 분열 증식만 하고 분화가 억제된다했는데 이들 배아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Oct4, Sox2. Nanog, SALL4와 같은 배아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도록 메틸화를 유도하면 가능하다. 또는 배아 유전자를 억제하는 키 유전자를 찾아서 그 유전자를 강력하게 발현시키면 가능하다.
만일 이러한 방법으로 줄기세포의 특성을 제거하면 암 줄기세포가 분열 증식을 멈추고 암세포로 분화가 될 것이고 이때 항암치료를 병행하면 보다 효율적인 암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항암제에 잘 반응하는 암세포만 있고 항암제에 듣지 않는 암 줄기세포는 없기 때문이다. 암의 재발은 항암제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암 줄기세포에 의해 일어난다.
암세포와 산소 공급
암은 그 크기가 1∼2mm 이하로 작은 경우, 즉 암 발생 초기에 세포 수가 많지 않을 때는 혈관을 통한 영양 공급 없이 주위 정상 모세혈관으로부터 확산에 의해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줄 혈관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암이 성장하고 전이하기 위해서는 암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이 필요해 암 전용의 새로운 혈관을 만든다.
이 과정은 저산소 상태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인데, 영양막 세포와 암세포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약 10개월 정도 자궁에 있으면서 오직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60조 개의 세포를 가진 3.4kg의 완전한 인체로 발전된다.
오직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이 10개월 만에 3.4kg이라는 거대한 크기로 자랐는데 암 세포 중에 이렇게 빨리 크는 암세포는 없다. 암 세포 하나가 이렇게 빨리 자라 3.4kg의 덩어리가 되었다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암 줄기세포의 위치
암 줄기세포는 암 덩어리 내에서도 아주 특별한 부위에 자리잡고 있다. 암 줄기세포가 존재하는 미세환경을 Niche라고 한다. 원래 Niche는 새의 알이 담긴 새의 둥지를 뜻한다. 암 줄기세포에서 둥지 역할을 하는 곳은 산소 농도가 낮은 부위와 혈관 주위, 그리고 정상 조직과 접해있는 부위이다. 이 3곳에 암 줄기세포가 분포한다.
암 세포가 만들어지면 혈관으로부터 약 150마이크로미터 범위 내에 있는 암 세포에는 모세혈관으로부터의 확산에 의해 산소가 공급된다. 따라서 150마이크로미터를 벗어난 지역에는 저산소(Hypoxia)구역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저산소 구역의 암 세포는 암 줄기세포 유전자를 발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암 세포가 이용하는 발효대사로만 살아가는 암 줄기세포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처럼 암 세포가 저산소 지역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한 결과, 암 줄기세포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암 줄기세포는 정상세포로서는 살기 힘든 열악한 환경인 저산소 지역에서 산다고 볼 수 있다. 산소와 영양 부족을 겪게 되면 암세포는 배아세포 단계일 때 작동하는 유전자(Oct4, Sox2, Nanog)를 발현시켜 암 줄기세포로 바뀐다. 이처럼 저산소 환경은 암세포에서 암 줄기세포 특성을 강화시켜 종양의 재발과 약물 저항성에 기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암 줄기세포가 되면 주위의 특정 환경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암 줄기세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떠한 환경이 암 줄기세포를 계속 도와주고 있을까? 해당 분야의 연구 결과, 혈관들과 주위 염증 반응들이 계속해서 암 줄기세포를 도와준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혈관을 없애버리거나 염증을 제거하면 암 줄기세포는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며, 이 때문에 암 줄기세포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장석원(충민내과의원 원장),
2024.10.15, SPECIAL 전문가 칼럼, MD저널, 편집>